2017년 김현미 장관이 국토부장관으로 취임하면서, 이해가 되지않는 PT를 연속하여 보게 되었다.
요점만 말하자면,
주택시장에 혼란을 가져온건 다주택자 투기꾼들 때문이고,
시장에 주택공급은 충분한 상태이며,
주거불평등 해소를 위해서, '다주택자는 살지 않는 집은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주택자들에게 세금 폭탄을 먹이겠다고 공표 하였다.
음???? 살지 않는 집은 팔라니 그러면 세를 놓지 말라고??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집주인 즉, '갭투자자'는
집값이 오를 것이라 생각하여 세금과 건보료를 부담하며 매수를 하는것이고,
전세로 사는 '세입자'는
집값이 오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여 남의 집에 세를 살면서
세금과 건보료 부담을 하지 않는 쪽인 것이다.
[또는 자본이 부족한 상태이며, 대출끼고 집을 사기 싫으니까 집 매수시점을 늦추는 케이스 겠지]
어쨋든 서로의 입장과 사정에 의해 각자 투자 행위를 하는 주체인데 한쪽만이 문제라고?? 뭔가 이상하다.
전세주는 집주인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나쁜놈이고,
전세로 사는 세입자는 사회의 선량한 시민이다?? 이런 논리가 아닌가?
이건 공산주의 국가에서 보던 내용인데...........세입자가 사는 집은 누가 공급을 하지???
[2017년 부터 문재인 정권동안 발표된 부동산 대책과 그에 따른 시장변화에 대한 데이터는
모두 정리하여 가지고 있다. 후에 별도로 포스팅할 예정이다.]
동시에 문재인 정부는 교육 평준화 정책으로 특목고 / 자율형 사립고 폐지 정책을 펼쳤는데
다주택자 비중을 줄여서 전국민 1주택자를 강요하고, 교육정책을 그렇게 하향 평준화를 시도 한다면?
당장 강남 대치동을 필두로 한 강남 8학군 전성시대가 다시 오겠네?
그리고 강남 집값 폭등장 오겠네?
나는 그렇게 이해가 되었다.
마치 15년 전, 노무현 정권때와 똑같은 레퍼토리 아닌가
나 또한 중 / 고등학교 시절 학군 좋은 지역에서 공부를 사람은 아니고,
오래간 공부를 피터지듯이 한사람도 아니다.
나는 사람끼리 각자 격차가 있음을 인정한다.
똘똘한 학생은 특목고 가서 국가의 브레인이 되어 국가에 기여 하는거고,
공부보다 다른게 적성이 맞은 친구는 다른 분야에서 길을 찾아 국가경제에 이바지 하면 되는 것이다.
똘똘한 사람도, 아닌사람도 노력과 능력에 따라 평등한 교육기회 부여라면 모를까
교육체계를 다 똑같이 평준화 시키겠다는건 각자의 특성과 개성도 무시한 처사로
오히려 사교육 시장이 훨씬 커지면서,
빈부격차에 따른 교육 양극화가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왜 이런 결과를 예상 하냐면, 모친께서 20년간 강남/용산쪽에서 사교육업계에 종사하셨기에
보고 들어온게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 김수현 수석이 쓴 '부동산은 끝났다' 라는 책을 읽어보면,
지속적으로 민주당쪽을 지지하게 하기 위해서 집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표현이 있다.
사회적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집주인과 세입자의 공생관계 틀을 깨트려서 좋을게 뭐가 있을까 싶다.
[정작 이런 주장을 펴는 자들이 소위 말하는 '똘똘한 한채'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내용에 대해 회사 내에서도 동조 / 동의하는 사람이 엄청 많았다는 것이다.
매스컴은 정권의 입맛에 맞게 연일 부동산 투기에 대한 악평만 쏟아내었고,
부동산에 관심 많았던 나에게 직접 "너같은 놈들 때문에 집값이 문제가 많다" 라고 대놓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주택자인 회사원이 보통 이런 스탠스 이고, 청약 당첨된 사람들은 반대입장이더라]
그분은 내가 모시던 팀장으로, 자신의 집은 오르기전에 싸게 처분하고, 전세가 급등하기 전 남의 집에
전세로 들어간 케이스다.
그 당시 난 앞으로 시장이 예상되어, 팀장께 집을 사라고 강권했지만 '전세로 살아보고 몇년 뒤 결정하겠다'
하시면서 신도시의 저렴한 전세로 가셨는데 지금은 그동네 전세값이 배 이상으로 뛴 상태라 안타깝게 되었다.
[그뒤로 그분 앞에서 '부동산'은 금기어가 되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그외에도 40대 이상 회사 선배들이 부동산 소유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인 분들이 많았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집값이 오르건 내리건 나와 내 가족이 편히 발뻗고 누워 쉴 수 있는 내집은 필수이거늘..........
대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조차 그런 분위기가 있다는 것은 처음 격은 충격이였다.
노동소득만이 신성한 소득이라 여기는 그런 회사 분위기 속에 나같은 부동산 쟁이는 눈엣가시가 될 수 밖에
[지금와서 느낀바로는 IMF때 부모님들의 자산가치가 박살나는 것을 직접 본게 40대 들이며, 그로인해
부동산에 관심이 생기기 어려울 수 도 있다]
나는 내가 번 돈으로 좋은차를 사서 끌고 다녔고,
결혼을 앞둔 후배들이나 동료들이 내집마련 방법을 물어볼 때마다 선의로서,
과거 부동산 경험 이야기를 조금씩 해주었던 적이 있었는데 [취미생활에 가깝다]
윗분들 눈에는 '알랑거리지도 않고 쉽게 넘어가지도 않는데, 부동산까지 잘아는 재수없는 놈'으로 각인된 것이다.
[전편에서 말했던 남의 험담을 좋아하는 또라이 선배가 전사에 나쁜놈 프레임을 씌워 내소문을
여기저기 퍼트리고 다녔다고 한다]
그 당시 나는 어짜피 어느정도 목표를 이루면 나갈 생각이였던지라
위에서 어떻게 보던지 말던지 일체 상관하지 않고, 내일 빵꾸 안내고
다른 분야의 자격증을 계속 공부하면서 부동산 투자도 계속 공부하고 다녔다.
이렇게 2017년이 끝나가는 년말, 현모양처 스타일의 선생님 출신인 여성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돈이 부동산 투자에 들어가 있고
결혼직전 수중에 8500만원 밖에 없었기에 세종 신도시에서 전세 1.2억짜리를 얻으면서,
모자라는 액수는 전세대출을 일으켜 신혼집을 차렸다.
사랑하는 와이프님과의 삶은 나에게 또 다른 기회와 책임감을 부여했다.
나 혼자 살았을때에는 투자만 열씸히 하면 됐지만, '가족'이 생기면서 온전한 보금자리가 필요해졌다.
특히 아이까지 생기면 보금자리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그 다음에 2018년 초,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바로 독서실을 끊어
쉬는날과 퇴근 이후의 저녁시간은 모두 자격증 공부에 투자하였다.
연애초기 부터 와이프님에게 '조만간 투자가와 사업가의 길을 걸을것이다' 라고 누차 말해 왔던터라,
내 사업에 필요한 자격증 종목을 단시간 내에 확보하려면 집중적인 시간투자가 필요했다.
칼퇴를 해도 매일 12시 넘어 들어오고, 주말에도 공부한다고 집에 없으니
와이프는 결혼해도 따로 사는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토로 했지만
회사를 빨리 나오고 싶었기에 정말 독하게 준비했던 것 같다.
그덕에 어디 여행도 가지 않고, 외식도 별로 안했기에
둘이서 버는돈은 거의 다 대출 상환에 쓰여,
전세대출을 모두 갚는데 결혼 후 반년도 안걸렸다.
그해 7월, 나는 부산쪽 부동산 시장이 타이밍인 것을 직감하며
수영구 남천동에 있는 재건축 아파트인 '삼익비치' 소형평수 투자를 하였다.
때마침 서울에 투자한 집의 전세를 올려받은 돈이 생겨 투자가 가능하였다.
삼익비치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로, 변호인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그 아파트이다.
아니다 다를까 부산은 2018년말부터 생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공급부족 현상이 발생되어 재개발이고 재건축이고 구축이고 할 것없이 모두 오르는 장이 되었다.
물론 서울 주택시장에 갈 돈을 죄다 묶어버려 '풍선효과'가 발생했다는 것도 원인 중 하나다.
수영구 남천동 '삼익비치'는 부산내 재건축 대장주인 만큼 큰폭으로 상승하였고
단기적인 차익을 보고 다음해에 정리하게 된다.
그러던 2019년 초, 나는 우리부부가 지내는 세종시가 조만간 급등장으로 돌아서지 않을까 걱정이되었다.
왜냐하면 17년 말부터 세종시를 강하게 규제한덕에 인근 대전광역시 부동산이 급등하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와이프도 직장이 세종시 근방이였고,나 또한 당분간 서울로 다시 올라가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이곳에서 우리를 위한 보금자리 마련을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느낌 상 세종시도 1년 내 수요/공급/심리 3가지 요소로 인한 급등장이 올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 자녀출산 계획을 늦추고,
아직 신혼집의 전세만기가 많이 남았지만 복비를 물어가며 나온뒤,
25평집 월세를 3년간 저렴한 조건으로 계약하여 투자를 위한 목돈을 확보하였다.
2019년 초, 당시 세종시에 강력한 규제정책로 인해 아무도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거래량은 물론 매매가 까지 큰폭으로 하락해 있던 상태로,
돈만 있으면 조건좋은 집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상태였다.
나는 2019년 벗꽃이 만발한 계절, 와이프와 같이
신혼집의 전세보증금과 거기에 신용대출을 더하여
세종호수공원 인근에 2채 갭투자를 하였고, 동시에 목표하던 자격증도 취득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되로 그해 10월 부터 세종 신도시 부동산은 급등하기 시작하였다.
회사 사람들은 바로 인근에 세종시 부동산이 급등하자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렇게 오를 수가 있어? 말도안돼' 란 분위기였다.
내 입장에선 세종시에 진작에 갔어야할 돈이 규제로 묶여서
17년 말 부터 대전부동산이 먼저 폭등을 한터라
조만간 세종 부동산에 급등현상이 발생하리라 쉽게 예측이 되었지만,
다 나처럼 부동산에 미쳐있는 사람들은 아닐테니.............뭐 그려려니 한다.
경험치 만큼 달리 보이는 법이니까
이렇게 전혀 애정이 생기지 않는 회사조직 월급쟁이로서 참아가며, 2019년 한해가 저울고 있었고
나의 관심은 세종의 주변의 유망지역으로 향했다.
세종 신도심 내부적으로 전세와 매매가 동시 급등 중이기에 사람들이 튀어나갈 탈출구가 필요한데,
나는 그 탈출구를 세종 조치원과 청주 오송으로 지목하였다.
게다가 두 도시는 천안/청주/수도권 쪽 직장 수요도 있는곳이기에
어느시점에 갑자기 급등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예상되었다.
19년 년말, 나는 1번 국도변의 조치원 아파트를 몇채 매수한 뒤,
20년 봄에는 오송 호수공원 인근 아파트도 사들였다.
그곳 공인중개사들은 '여기 오른는 지역이 아닌데 왜 이렇게 여러개를 투자하죠?' 는 반응이였다.
결과는 반년도 안되서 빠르게 나타났다.
조치원은 20년 봄 부터, 신도심의 전세 급등장에서 나온 세입자들이
매매수요로 쏠리면서 폭등이 시작되었으며,
오송은 20년 5월 인근 오창쪽의 방사광가속기 발표이후로
청주쪽 투자수요가 크게 늘면서 폭등장이 시작 되었다.
20년 가을, 애증의 애물단지였던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가 다시 귀하신 몸이되어 좋은값에 정리를 하였다.
그리고 분위가 아주 좋은 한남 재개발 빌라도 정리를 하면서 현금을 쥐었다.
재건축 / 재개발은 시간적 리스크와 분담금 납부가 귀찮고, 불경기가 되면 전세도 째깍째깍 올려받기 어려워
과거의 뼈져린 경험을 함으로서, 가치가 상승하면 정리하여 돈으로 바꾸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블로그를 적으며 회상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부동산 거래 경험을 쌓았고,
이곳에서 묘사되지 않은 거래경험도 몇건 더 있다.
보유중인 용산구쪽 아파트도 여전히 분위기가 좋았고, [요즘은 한국에서 용산이 가장 핫하다]
세종시도 점점 살기 좋아지고 있었다. [현재 침체지만 몇년뒤 다시 호황이 올 것으로 믿는다]
20년도 부터 나는 주택 매매가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전세가와 월세가만 모니터링 하게 되었다.
20년 12월 마지막 날, 나는 부동산 전문가로서 영역 구축을 위해
21년 중에 다니는 회사를 퇴사하여 새로운 길을 가기로 다짐하였다.
어느시기가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해를 다 채우고 나올지,
중간에 나올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21년 1월 1일, 거실내 탁자에 놓여있던 자그만한 행운목에서 꽃 봉오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행운목에 꽃이 피면 좋은일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던데........
동시에 와이프가 두줄이 표시된 임신 테스터기를 나에게 보여줫다.
아이가 생긴것이다. [행운목의 꽃 덕분에 태명을 행운이로 정하게 되었다]
아이가 생기면 가장의 삶의 무게는 더 무거워 진다지만
나는 아직 철이 덜 들었는지 너무 기분이 좋았다.
태몽과 검사결과 아들로 확인되어 미래의 친구가 태어난다는 말에 마냥 좋았다.
동시에 내가 다니는 회사는 경영악화로 사정이 급격히 나빠졌고, 희망퇴직부터 시작하여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할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보통 회사원 입장에선 아이가 생겼는데 사람들을 자르기 시작했다면 불안해하고 매우 스트레스 받았겠지만,
IMF시절 부터 돈을 벌어본 나로선, 평생 안정적인 것은 절대 없음을 알고 있던지라
긴시간 동안 남들이 안심하고 쉬면서 놀때
많은수의 자격증을 준비하여 인사이트를 키우고 자유로운 노동소득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20년 가까운 실전투자로 거친 자본주의 생태계 속에서 포식자가 되기 위해 경험을 쌓았으며,
부동산 전문가로서의 나만의 브랜드 만들기에도 성공했기에
돈주는 조건의 희망퇴직 기회가 생기는 즉시 '1 빠따' 로 튀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21년 4월말, 드디어 기회가 왔다.
이 지긋지긋한 회사의 월급노비의 '시간적 속박'에서 벗어나 '내가 즐거워하는 영역'에서 종사 할 수있는
기회가 말이다.
마침 그 해년도 인사고과가 낮게 나와 희망퇴직을 지원하면 나갈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회사에서 많은 사람을 잘라내기 위한 구조조정 전 단계이다]
나는 몰래 희망퇴직을 신청하였고, 퇴직금을 합하여 3년치 실수령 연봉에 가까운 돈과
210일간 실업수당을 챙기고 그회사를 나왔다.
마지막 출근일, 만8년의 회사생활을 마감하며,
나는 친한동료들과 인사하고, 군대에서 전역하는것 마냥 즐겁게 귀가 하였다.
과거의 내 그릇크기에 대한 오판으로 무리한 투자에 대한 대실패를 하였고,
다시 재기를 위해,
학교를 복학한 시점으로 부터 회사 생활 마감까지 10년을 고생하였다.
현재의 나는 건강관리와 호수공원 걷기가 취미인 산책남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나의 슬프고 고통스런 과거사를 후세대에게 물려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과거엔 있어 보이는 겉멋 추구했었으나 지금은 남에게 있어 보이는 것에 관심 전혀없다.
은행부채는 일체 없는 상태이며, 그냥 하루하루 재미있게 살려고 노력중이다.
묵묵히 노력하며 살다보니 큰부자는 아니더라도, 나름 적당한 작은 '성공'을 거두고,
암울했던 과거사로 인해 '독기'을 품고 살었던 내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영혼적 속박에서 벗어나
남을 돕는 즐거움에 보람을 느끼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
현재 내 인생의 최종목표는 개천에서 난 용을 최대한 많이 만드는데
영향을 줄 수 있는 장학재단을 만드는 것이다.
올 하반기부터 사회적 법인을 설립하여 나와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저소득층에게도 내가 지금까지 공부해왔던 모든것과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눠주어
100명 중 1명이라도 이 사회에서 유능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너무나 보람있는 일일 것이다..
나의 시간과 나의 돈을 그런것에 투자할 수 있을때 비로소 '성공' 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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