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경험 시리즈 6탄 - 대학교 시절의 재테크 01
성인으로서 20대가 시작된 2002년 말에는 16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그당시 대통령 선거에는 한나라당의 이회창 전 감사원장,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전 인권변호인이 팽팽이 맞서며,
2%정도의 차이로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그 당시 난 만 20세가 안되었기에 투표권이 없었고, 그냥 구경만 했던 것 같다.
노무현 후보는 충청권에 새로운 행정도시 건설추진을 공약으로, 충청권에서 많은표를 확보하면서 승리를 굳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후 대전, 청주, 공주 사이의 삼각지대 중 어느 한곳에 세종시 설치를 추진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술렁였다.
2003년 봄,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나도 다시 돈벌이를 위한 취업을 하였다.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에서 공인중개사의 보조원으로 취직한 것이다.
이과계열 4년제 대학교에 입학하면 보통 과외활동을 하면서 학비와 용돈을 벌게된다.
그러나 나는 부동산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이유는 크게 2가지 였다. 부모님때의 투자스토리, 고3때 인생멘토로 부터 들어온 부동산 스토리를
계속 접하며 이 업에 대한 관심을 키웠고,
생애 처음으로 취득한 '내자산'으로 인해 부동산에 대해 흥미가 커졌기 때문이다..
내가 도곡동에 미분양 아파트를 취득한 2002년 봄 이후로 부동산시장에 온기가 돌기 시작하였고,
김대중 정권 말인 2002년 월드컵 이후부터 부동산 상승장이 시작되었다.
부동산 상승장은 중산층들이 가장 많았던 강남쪽 부터 시작하였고 이후로 전국 각지에서 상승장이 시작되었다.
IMF 시즌동안 억눌려 있던 투자심리가 월드컵 이후 경기가 흥하면서 폭발할 조짐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새로히 선출된 노무현 정권은 취임하자마자 바로 토지거래허가제에 대한 정책발표를 시작으로
퇴임때까지 총 26번에 걸친 부동산 정책을 발표하게 된다.
나는 학원가로 유명한 강남구 대치동에서 공인일을 배우면서
이 노무현 정권 내내 '부동산'과 '돈'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를 21살부터 온몸으로 느껴보게 되었다.
부동산일을 가르쳐 주신분은 평소 풍수에 관심이 많은 분이셨다.
처음에는 '풍수'라는 테마가 나에게 있어 사이비 종교같이 느껴졌기에 처음부터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그당시 나에게 믿을 수 있는건 튼튼한 두다리 뿐 이였기에 손님들을 맞아 이집, 저집 보여준건
주로 나의 역할이였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나 보니 '풍수'는 일종의 비공인 '통계학'에 가깝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사람이 잘되서 나간다는집,
망해서 나간다는집,
이혼하면서 재산분할로 나가는집,
시험운이 있다는 집,
누군가 돌아가신 집 등등 온갖집을 다 가보게 되었는데 이런건 바로바로 눈에 보이는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채광은 잘들어오는지,
앞에 물의 기운이 있어 재복이 올 수 있는지, 재복이 오히려 빠져나가는 것인지,
도로가 감싸고 돌아 좋은 기운이 계속 집에 들올 수 있는지,
배산임수지역인지,
땅의 좋은기운과 해의 좋은기운을 골고루 균형있게 받는지
나무의 기운을 좋게 받는지 나쁘게 받는 지 등등
정말 온갖요소가 상호작용하면서 어떠한 '경향'을 만든다는 점이 '풍수'라 깨닫게 되었다.
현대에 있어 풍수는 그냥 참고사항도 안되는 '미신'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인이 어느정도 부를 쌓고 남들과 차별화를 위해 +@를 원한다면 풍수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대치동에는 우선미(우성, 선경, 미도)라 불리는 메인 아파트 단지가 있고
양재천이 우선미 단지를 끼고 돌아가는 모양새이다. 즉 풍수적으로 아주 좋은 입지다.
우선미에 사시는분들은 이사수요가 많지 않았고, 대부분 부자였다.
그당시 대치동 우선미는 강남구에서 압구정/청담동 사시는 분들 바로 아래 클래스에 위치할 정도로 알부자들이
사는 곳이였다. 체감상 이곳에 이사로 들어오면 오래 사시되 전출이 적은편이였던것 같다.
그외 청실, 주공, 은마아파트가 있었다.
내가 공인보조로 있을때 주공아파트는 재건축에 들어가 대치 동부센트레빌이라는 아파트로 재건축이 되었고
청실아파트는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였다. [현재 래미안대치팰리스]
내가 가장 자주 왔다갔다 한 것은 은마아파트로,
대치동에서 대로변 입지가 가장 좋고 단지 세대수도 많으며, 특히 재건축 투자수요와 학군수요 둘다 많은곳이다.
은마는 대치동 내에서 다른 단지보다 전세가 저렴한편에 속했기 때문에
학군을 위해 중~고등학교 동안 전세를 사는 수요가 많아 거래가 자주 있엇기 때문이다.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중개업무를 하다보니 집주인분들, 세입자분들의 다양한 견해와 투자스토리를 듣게 되었다.
이제 갓 대학생인 나로선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가 많았고, 지금의 내가 돌아보면 과외 아르바이트 보다 훨씬 값진
인생경험이였다.
내가 한창 공인으로 일을하던 2003년 5월경에는 서울 강남은 물론, 그외 서울 및 수도권에서 부동산 호황이였던 지역(이른바 버블세븐), 충청권 일부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기 시작하면서
정부의 부동산 규제정책이 본격 시작되었다.
그리고 10월쯔음에는 부자세라 불리는 '종합부동산세'가 추진되면서 시장에 많은 반발이 있었고,
동시에 '주택거래신고제'가 도입되면서 부동산 시장에대한 정부의 감시관제가 심해졌다.
사람은 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싶고, 하라고 하면 않하고 싶은 청개구리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오히려 강남구, 서초구, 용산구 시장을 중심으로 부동산의 열기가 더욱 타오르기 시작했다.
IMF가 끝나고 우리나라 경제가 회복되면서 사람들이 다시 안정적인 투자처인 '부동산'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었던것이다.
그당시 기억으로 사람들은 주식과 부동산에 관심이 없으면 도태되는 분위기가 되었다.
부동산을 잡겠다고 호언장담한 정권이 부동산을 못잡게 되는 형국이 되자
주택담보대출(LTV)비율도 내리고 다주택자의 양도세를 더욱 올리게 되었으며 청약과 전매도 더욱
통제하게 되었다.
이런 정책을 고안한 노무현 정권 내각의 주역은 '부동산은 끝났다' 책의 저자 김수현 비서관 으로 기억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엔 사회수석을 하였다]
2022년 현재 시점이나, 19년전이나 똑같은게
시장에 규제를 계속 가하여 돈의 흐름이라는 거대한 강물을 인위적으로 막게되면
일정시간 뒤 터지면서 쓰나미 마냥 쓸려나간다는 것을 우린 잘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나는 부동산을 하면서 중개수수료로 동년배들보다 나름 돈을 만지게 되었다.
부동산에 관심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된 정보를 바탕으로
돈 어느정도 모였을때 마다 엄한데 쓰지 않고
어머니와 같이 재개발 지역의 빌라를 다수 사들이면서
'자고 일어나면 1억 올랐어요' 시대에 직접 플레이어로서 시장에 참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