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경험 시리즈 9탄 - 직장인 시절의 재테크 01
2013년 입사한 00 방산이라는 회사는 흔히 말하는 군수업체다. 즉, 무기를 생산해서 군에 납품하는 회사이다.
나는 군에서 오래간 근무한 경험도 있었고, 과거 밀리터리 오타쿠이기도 해서 프라모델 모형 만들기와
수집이 취미였기에 00 방산의 미사일 품질보증 관련 업무를 맡게 되었다.
나는 군조직에 있을때 부터 진급이나 조직내에서 출세욕심이 전혀 없었고,
어느정도 수의 부하를 둔 장교로서,
나의 후배장교나 부하들에게 잘대해 주는 것을 최선으로 여겨왔다.
내가 실패했을때 그들이 나를 살려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난 오로지 경제적 자유와 여유있는 삶을 꿈꿧고, 그 분야에 대한 확실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기에 굳이 눈에 띄는 일만을 찾으며,
윗사람들에게 알랑방구 뀌고, 아랫사람들을 쥐어짜내는 파리, 모기, 너구리 같은 생활을 하지 않았고,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정직한 '군인' 그 자체로 본분에 충실했었다.
00그룹에 입사해서도 내 본질을 잊지 않고, 숨기지도 않으며 살아왔었다.
비록 내 투자에 실패했다지만, 같이 입사한 사회초년생 동년배들이나
왠간한 회사선배들 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삶의 무게를 경험하였고,
밑바닥에서 스스로 일궈낸 실적도 많았기에
굳이 남에게 잘보이지도, 남을 눌러 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도 일체 하지 않으며 지낸 것이다.
어짜피 나의 실패를 만회할 존버타임은 5년을 넘길 것 같지 않았기에, 이 조직에서 나의 주목적은
대출을 일으키고, 캐쉬를 확보할 수 있는 '성공'의 교두보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리 야근하고 밤새워 근무하는 조직 분위기라도 처음부터 워크라이프 밸런스를 철저히 지키며
회사에서 나에게 부여된 '내일' 말곤 다른일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저녁마다 부동산 공부와 자격증 취득을 위한 자기개발 투자에 집중하였다.
[그 다른일도 내가 처리한다고 일의 총량이 줄어드는것도 아니고 더욱 노예화가 되겠지 어짜피 주는돈은 똑같으니까]
물론 나의 일을 미루거나, 빵꾸내는일은 거의 없었고, 남에게 내일을 전가하는것도 전가받는것도 싫어했기에,
후배들에겐 밉보이지 않아도 윗사람들은 나를 몹시 싫어했다. [즉 '+@의 서비스를 원하거든 돈을 더 주쇼' 이거다]
회사생활의 가장 큰 스트레스 중 하나는, 근처 조직원 중 평소 싸가지 없기로 유명한 군미필자 양아치 회사선배로,
별로 대단치도 않은데, 있는척, 남들 흉보기, 후배에게 일미루기 등이 습관인 사람이 있었다.
내 인생 철학과 정반대인 사람이라 거리를 두고자 하였고
굳이 그양반이 있는 회식자리는 시간낭비, 감정낭비로 보여서 무조건 피했던 것 같다.
[그 양반은 일체 상대 안해주는 나를 제일 싫어했고, 나는 그양반을 군에서 만났으면 최초로 구타 및 가혹행위를 했었을 정도로 증오했다]
00그룹에서 기업 교육을 받을때 '송충이는 솔잎을 먹듯이 00그룹은 00만을 해야한다' 라는 말이 있었다.
즉, 잘해야하는 것에 집중하여 그것만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부동산쟁이가 부동산을 집중해서 파야지 주식같은 다른 투자처를 공부하는것은 효율이 안좋다.
내가 있던 대전에 틈날때마다 인근 세종시와 대전 아파트 임장을 다녔고
주말에 서울에 올라갈때 마다, 서울내 임장 활동을 하며 어떤 부동산을 투자해야 돈을 벌 수 있는지
연구를 계속하였다.
동시에 저녁마다 기술자격증을 틈틈히 공부하면서 기술변화와 트렌드,
그리고 그것이 부동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나름의 내공을 키웠다.
2014년 봄,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국민들이 비탄에 잠겻을 시기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던 수백명의 어린 꿈나무들이 산채로 수몰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정작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자기들이 먼저 살겠다고 먼저 구조되는 말도 안되는 일이 발생한다.
세월호 내부에 대피를 해야 할 어린친구들에게는 '괜찮으니 거기 있어라' 라고 방송하면서
본인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했다니.............. 모럴해저드도 이런 모럴해저드가 없다.
어린친구들은 얼마든지 희생시키더라도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 딱 이거 아닌가.
나 또한 군에서 부중대장으로 있을때 훈련 중 수몰되어 유능한 간부를 떠나보낸 가슴아픈 상처가 있다.
[2010년 7월 장성 육군기계화학교 장갑차 수몰사건]
한명의 부하가 세상을 떠도 가슴아픈일인데 수백명의 교사와 꿈나무들이 산채로 수장되었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을정도의 슬픈일이다.
세월호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는데,
무언가 가스라이팅으로 타인을 도탄에 빠트리는 행위가 '세월호 침몰'과 연상될 정도이다.
객실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의 반복이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으며,
소위 '말 잘듣는 학생들'이 죽는 결과가 되어 안타까움과 공분이 더 컸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국민들은 재난사고에서 방송이나 정부 담당자의 말을 불신하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윗대가리 말 잘들으면서 헌신하면 헌신짝 취급을 당한다는 명언이 떠오른다.
나는 위에서 부하들을 많이 다뤄본 입장이기에 본능적으로 동료나 상사들의 칭찬이나 인정을 경계한다.
어짜피 회사에서 우리의 목표는 돈을 버는것이고,
좀더 좋은 직급, 좀더 많은 수당을 챙기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노동소득이 다라고 생각한다면 대부분 이렇다]
그렇기에 부하를 칭찬과 인정으로 위장하여 잘 구슬린 후,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게 상사로서의 기본전략이다. [물론 아닌 극소수의 사람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평생 회사에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명심하라 우리는 자본주의세계에서 살고 있다.
내가 20대 초반부터 온몸으로 경험한 자본주의 세계속의 생태계 제 1원칙은
'남의 시간과 체력, 심지어 목숨까지 돈이나 지위로 매수하여 편하게 나의 이득을 챙기는 것' 이라는 것이다.
회사생활도 자본주의 제1원칙과 다를바 없다.
어디까지나 남의 노력에 숟가락을 잘얻고, 남을 잘 쥐어짜내 실적을 만들고,
그것으로 내가 윗사람에게 인정받아 진급하고 연봉을 더 받는게 능력인 것이다. [이른바 사내정치]
나는 그런 생태계를 빨리 탈출하고 싶었다.
2014년 부터 탈출계획을 본격적으로 세워 준비를 하였는데, 다시 투자를 벌릴 필요가 생겼다.
일단 내가 직장인으로서 벌이가 있기에 월세소득보다 목돈확보가 중요해졌다.
그래서 어머니가 보유하시던 개봉동 아파트, 내가 보유하던 강남/용산의 원투룸형 소형아파트를 정리하여
다시 목돈을 검쥐고 2015년 초 다시 나의 본 무대였던 강남구, 그리고 용산구에 문을 두드렸다.
그 당시 박근혜 정권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LTV를 70%까지 풀어주고,
'미친전세시대'를 끝내기 위해 다주택자 양성을 유도하며 임대차시장의 안정화를 꾀했다.
10년에 가까운 부동산경기 침체속에, 아파트 투자는 누구하나 선듯 나서질 못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지난 침체기에 호되게 당했다지만, 경제지식과 수요와 공급에 대한 개인적 노하우가 있었고
때마침 박원순 서울시장이 열씸히 공급을 말살 시켜준 덕에 투자의 적기로 판단하였다.
내가 미래의 유망 투자처로 고른곳은 강남구 대치동, 용산구 동부이촌동, 용산구 한남동 3곳으로
그 중 강남구는 이미 압구정동 현대를 억지로 투자 중이였기에
[그때까지 진짜 팔리지도 않는 애물단지 중의 애물단지, 지금 들으면 귀신이 곡할 소리일듯?]
용산구 한남동에 한남3구역 재개발 빌라, 한강뷰 대형평수 아파트를 매수하였고,
용산구 동부이촌동내에 소형평수 아파트 여러채를 연달아 매수하였다.
나의 부동산 투자 철학은 기본적으로 '풍수'에서 근거한다.
그렇기에, 용산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었고, 향후 서울에서 가장 비싸질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그이유는 블로그상의 용산구편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울아파트는 2015년에 가격이 가장 저렴했을 시기로
2022년 현재 시점에선 그당시 가격에서 적어도 10억 이상은 오른 것 같다.
2016년은 점차 부동산이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며 거래가 활성화 되기 시작했으나,
갑자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위가 빚발치게 된다.
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관심이 없었지만, 과거 노무현 정권의 부동산 스탠스와 똑같은 주장을 하는
문재인 후보를 매우 반겼다. [가격을 급등시켜 줄 것 같아서]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어 감옥살이를 하게 되고,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게 된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부동산에 대한 어마어마 한 규제를 펼쳤고,
정권말까지 총 28번의 부동산 규제정책을 발표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책은 과거 노무현 정권때와 거의 같은 내용이였고,
그정책을 수립한건 노무현 정권당시 실세였던 김수현 수석이였다.
아아..........신이시여 이렇게 기회를 나에게 다시 주시다니......당연히 예상되로 강남 부동산 부터 폭등장이 되었다.
강남권 부터 시작한 부동산 폭등장은 걷잡을 수 없이 인근지역으로 퍼져나갔고, 과거 버블세븐지역 못지 않게
강서송[강남 서초 송파],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 지역을 중심으로 서울 전역에서 부동산 폭등이 발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