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경험 시리즈 7탄 - 대학교 시절의 재테크 02
2004년은 이명박 서울시장이 서울의 대중교통체계 개편을 강행하면서
버스 기본 요금자체가 200원씩 정도 올랐다.
중앙차선제와 지하철환승시스템을 만든것인데 이게 처음에는 표면적인 비용도 올라가고 불편함이 너무 많았다.
지금은 환승이 매우 편리한 시스템이지만, 대중교통 기본료가 크게 오른게 그때부터이다.
그 당시 서울 이명박 시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던 존재로 부동산을 규제하기 보단 공급을 늘려 안정을 꾀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이였다.
부동산업 종사자로서 맨날 규제 분위기에서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지만, 뚜벅이엿던 나에게 버스비 200원 인상이 참 싫었던 것이다. [이후로 내 재테크에 가장 큰 타격을 준 이명박 대통령을 절대 좋아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아무튼 나는 여전히 부모로 부터 기존 등록금외에는 경제적 지원을 받을 여건이 안되었기에
낯에는 강남에서 중개보조원으로 일하다가 저녁타임에 버스를 이용하여 수원에 있는 학교로 통학하였다.
대학에선 주로 야간수업을 들었었는데, 야간타임 수업은 나이때가 어느정도 있는 학생들의 수업이였기에
공고출신인 나로선 기초가 부실해 밑바닥을 깔아주는 역할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2년정도 다닌 후에는 대학생활을 장기간 쉬게 되었다
다만, 이공계 출신 공돌이로서 공부의 끈을 놓고싶지 않아 기술자격증을 다수 공부하게 되었고
항공관련, 기계관련 자격증을 다수 공부하여 취득하였다.
주경야독은 10대 후반때 부터 늘상 해오던터라 일을 하면서 공부하는게 쉽진 않았지만
자신을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캐릭터육성'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모티베이션이 생겼다.
원래 무언가 성취를 위한길은 외로운 길이라 하지 않던가
친구들과 술먹고 놀고 클럽가고 미팅하고 그런것 보단,
혼자 묵묵히 자기개발과 돈벌고 투자를 탐구하는 활동이 나에겐 재미잇었다.
그렇게 게임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건만 이제 다 과거 이야기가 되버렷다.
남의 만들어논 가상현실에서 캐릭터를 키우고, 부를 쌓으며 노는것 보단
'현실'에서 내자신을 캐릭터라 여기고 내자신을 키우고 투자하는데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이다.
현재 나는 13개 정도의 자격증이 있다. [세봐야 정확하게 알겠다]
당연히 부동산업을 했으니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고,
이공계 출신이기에 기계, 항공, 전기에 대한 자격증도 있으며
화학과 감정평가론, 드론에 대한 공부도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 투자에 대한 시야 뿐 아니라 기술발전과 트렌드,
뭐가 좋은 투자처가 될 수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인사이트가 생기는데
20대 초반부터 시작한 자격증 공부가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보통 자격증은 따는순간 공부한것을 다 잊어버린다지만,
이것을 어떠한 투자에 활용하면 좋지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공부하면 꽤 유용해진다.
예를들어 내가 전기자격증을 공부 하면서
한전에 있는 친한형님이 "00땅에 지중선로 매설 및 대형 변전소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라고 한다면?
그땅은 대박나는 땅인것이다.
도시개발계획이 확실하다는 이야기 이고, 인구수와 기업수가 보장된다는 단편적인 근거인 셈이다.
전기시설이 지하로 묻히냐, 지상에 남아있냐의 차이가
땅가치와 크게 연관된다는 것을 전기공부로서 정확히 알게 된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자격증을 여러개 따다보니 자격증만으로 학점을 대량으로 채워 학사학위를 받는 방법을 알게되었고,
지금까지 내가 학교를 다니며 받은 학점과 자격증을 합치니 독학사 같은 학위가 나오게 되었다.
마침 군대는 또 돈도벌고 리더쉽도 키울 수 있다는 장교로 입대가 가능했기에 이 학위는 아주 유용했고
그렇게 힘들게 입학한 대학교에서의 졸업은 점차 마음에서 멀어진다.
그러던 2005년,
기준금리가 지금과 비하면 두배 이상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은 연일 폭등추세였고
나는 영끌해서 샀던 강남구의 아파트를 정리하고 규제의 여파가 아직 미치지 않은
서울내 재개발지 여러개를 투자를 하였다.
구로구 개봉동, 오류동, 용산 갈월동, 후암동, 청파동 등등 대지지분 10평이상이면 가리지 않고 투자를 하였다.
이때 또 서울의 여기저기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공부하며 머릿속에 서울의 개발지도를 그릴 수 있게되는 원동력 된다.
2005년 8월 쯔음에 부동산 대책이 또 나오면서 양도소득세 중과세, 분양권 전매제한등이 한층 더 엄격해 졌다.
안그래도 재건축 위주로 진행하던 강남, 특히 대치동의 아파트들은
임대주택 공급 의무화 제도시행으로 재건축 사업성 자체가 똥망이 되던터에,
투기지역에서 재건축 조합원지위 양도 금지까지 되버리니, 가격은 올라가도 중개거래가 힘들 지경이 되었다.
게다가 정부에선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개발이익 환수 이야기 까지 나와버리니
안그래도 긴가민가했던 재건축 주요 아파트들은 사업진행이 올스톱되었고
이런저런 비리이슈로 조합장이 수차례 바뀌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특히 은마아파트가 심했다.
재건축은 정말 아무리 입지가 좋아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정치돌아가는 판과 진행하는 사람을 봐야하거늘,
일반투자자가 그런 본질적인 면을 보는건 쉽지 않은듯 하다.
이당시 부동산 공급책을 강력히 주장하던 이명박 서울시장은
뉴타운 정책 강하게 밀었고 서울내 재개발지 빌라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하였다.
서울 전역이 불쏘시개 마냥 타오르기 시작했고, 내가 사둔 재개발지 몸값도 폭등하여 많은 차익을 보고 정리하게 되었다. 동시에 부동산일을 그만두고 본격 전업투자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2006년말, 나는 부모님과 여기저기서 번돈을 바탕으로 일생일대의 가장 큰 투자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것은 강남의 최고 대장주인 압구정 현대 아파트, 반포동 반포주공3단지 재건축에
'영혼과 대출까지 다 끌어모아' 가장 고점에 투자하게 된 것이다.
사실 투자는 그전에 멈췄어야 했거늘 사람욕심이란게 항상 꼭지점을 향해가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당시 나의 그릇크기를 과신한 나머지 일생일대 실수를 통크게 지른것이다.
사놓기만 하면 무조건 오르니 마치 마약에 취한 사람 마냥 리스크에 대한 생각을 전혀 못하게 된것이다.
어쨋든 큰 꿈을 가지고 강남재건축 2주택자인 상태에서 2007년 육군학사장교 50기로 입대를 하게되었고
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소위 임관을 하여 후기교육을 받을때에도 근거없는 자신감 하나는 짱짱했다.
"누구도 나를 감히 만만하게 못여기리라 나는 과거 흙수저였지만 지금 20대 중반에 강남에서 최고로 비싼 집 두채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무너지는건 딱 1년도 안걸렸다.
그다음해 2월에 미국의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인한 모기지론 부실채권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2008년 2월은 그야말로 주식, 채권시장의 검은장막이 드리웠고, 이는 어느정도 시간차를 두고 부동산에 큰영향을 주게 된다.
때마침 그때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세곡/내곡동땅 그린벨트를 풀면서 대량공급을 추진했다.
동시에 재개발, 경기도 개발을 추진하면서
당시 강남아파트가 평당 4500~5000쯤 되는것을 1/3가까운 가격에 대량공급을 때려버리기 시작한다.
이두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지면서
내가 쌈짓돈 몇천으로 투자했던 주식은 당연히 휴지조각이 되었고,
나의 자부심 그자체였던 강남 재건축은 이때부터 속절없는 추락을 하게되어 2012년까지 반값까지 가는 경험을 하게된다.
하우스푸어란 이야기가 이때부터 유행했는데 집값은 장기간에 걸쳐 폭락하고, 대출이자 내기엔 힘들고
집이 있어도 대출때문에 하우스푸어라는 이야기가 생겼다.
역시 사람은 잘나갈때 겸손해야할 줄 알아야하고 리스크에 대한 방비를 항상 단단하게 세워야 한다.
재테크 책이나 요즘 유행하는 유튜버들을 보다 보면 부채도 자산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정말 이건 반은 진리이고 반은 아닌게, 그 대출이 집값이 줄어든다고 같이 주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대출은 자신 또는 자기 가족들의 인생을 옥죄는 감옥이 된 셈이다.
나는 소위때부터 전역때까지 한달에 30만원 이상을 써본적이 없다.
대부분 대출이자낸다고 어머니와 같이 팍팍하게 살았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자산은 긴 기간동안 쇠락길을 걸었다.
대출이자와 생활고에 못이겨 결국 반포주공 3단지는 반포자이로 재건축되던 시기에
어느 돈많은 사람에게 헐값에 나의 피눗물을 묻히며 떠나보내게 된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도통 팔리지 않아 그냥 세를 줫다.
2009년부터 미친전세라는 이야기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다른아파트들은 전세가 팍팍올라도
재건축 추진아파트는 전세를 올리기 어렵다.
정말 그때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세종시 땅을 샀어야 했는데...........
군생활을 몇년간 하면서 전역하는 순간까지 나의 인생은 상승곡선에서 하락곡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정말 도닦는다 생각하고 어디 돌아다니지도 않고, 휴가나와도 집에 조용히 있거나
그냥 내 부하병사들과 조촐히 치맥파티 정도나 했었다.
2010년 말, 군에서 전역 후 어머니 체력도 이제 예전만 못하시고
나도 그냥 뭐든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2011년 봄, 대학에 복학을 신청하였고
이때부터 다시 거의 10년간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게 된다.